2014년 11월 13일

유니크 탄생 이후

2015년 2월 20일, 꼭 백일을 맞았다.


나름 평탄했던 50일을 지나

이후로는 고열(=입원)과 최근엔 감기로

고생정을 시키긴 했지만


 

 


하루도 거름없이

국방부 시계 돌듯 자란 유니크는

백일동안 많이도 컸다.


백일 세레모니는 당일이 설 연휴인지라

일주일 전인 14일에 양가 부모님을 모셨다.



유니크의 백일상은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간편하게 세트로 대여하는 것보다

하나하나 결정하고 만드는 게 수고스럽긴 했지만

더 의미있고 남길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백일 때때옷도 빌리지 않고

베이비페어에서 야무지게 구입했다.

남자 애기지만

스타킹도 귀엽게 잘 어울린다.


거기다 아네스가 특별히 주문한

머리띠까지 더하니

'물고 빨고싶은 내 새끼 탄생이다.



세레모니 당일,

나름 완성된 백일상 모습이다.

왁자지껄하게 꾸미지 않았지만 깔끔하고 이쁘다.


특히 아네스의 아이디어가 빛난

와인잔에 담은 딸기가 백미!


떡은 아직 차리기 전인데

야심차게 주문했으나 온다 온다 말만하고

꼭두 새벽부터 거제에서 올라오신

부모님보다 늦게 도착했다.


축구 시작했는데

치킨이 도착안한 것처럼 맥이 풀렸지만

그래도

축구는 재밌고 치킨은 맛있듯

모든 게 갖춰지고보니 만족스러웠다.



백일 떡케잌까지 차리고

주인공도 자리를 잡으니 준비완료-


배달은 늦었지만

저 떡케잌 진짜 맛있다.


유니크는

분주한 우리를 구경(?)하느라

오전 낮잠을 거르더니

정작 앉히고 나서는 뚱한 모습이다.




잠이 모자란지 한동안 멍하다가

놀아주고 모빌도 흔들어주고 했더니

점점 기분도 풀리고 집중력을 찾은 모습-



역시 애기 잔치는

휘황한 금반지가 포인트다.

아빠도 없는 24K를 양손에 세 개나 둘렀다.

특히 외할아버지가 특별히 주신

한 돈 반지의 묵직함이란!


아빤 니가 24K지만

저 24K도 탐나는 건 어쩔 수 없다.

"見金生心"



백일 세레모니는 역시

기념사진이다.

우리는 물론 양가 부모님 그리고 형네 식구들이

돌아가며 유니크와 축하의 순간을 남겼다.


유니크가 다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내 손자!)가 백일이 될 때까지

남았으면 좋겠다.


우리 사진은 민망해서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으로 대체-

멀리 계시다 보니 자주 못보여 드리는 게

늘 죄송한 마음이다.


사진과 영상만으로 풀지 못한 손자사랑을

이렇게 짧은 몇 시간이나마 해소해 드려서인지

우리보다 표정이 더 밝으신 모습.


요즘

손자가 자식보다

훨씬 더 예쁘고 좋다는 말씀을 항상 하신다.

서운하긴 커녕 뿌듯하고 감사하다.



특별히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80일 형인

(그래서 형이라고 부를)

조카 감탄이와도 사진을 남겼다.


역시 형은 형이라

확실히 크기도 하지만

둘의 피부색이 저렇게도 다른 게 재밌다.


아무튼 순조롭게

백일 세레모니가 마무리 되었고

설 연휴 직전엔 회사에 백일떡도 돌렸다. 


나도 그랬지만

남의 애기는 어쩜 그렇게 금방 자라냐며

놀라들 했고 또 축하해 줬다.



진짜 백일인 2월 20일에는

아네스가 새벽 4시부터 일어나

백일 삼신상을 차렸다.


아기를 점지하는 세 신령에게

백일 당일 해 뜨기 전에

흰쌀밥과 미역국, 정화수, 삼색나물을 올리는데


꼭 당일에 만들어야 하고

미역을 가위나 손으로 자르면 안되고

소금을 쓰지 않고

간을 미리 보면 안되는 등

지켜야 할 것이 많아

아네스가 전날 준비부터 고생을 많이 했다.


그만큼 민간신앙이지만

유니크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소중히 모셨다.


삼신상을 올리고

10분 동안 유니크만 남겨두고

자리를 비우는 데

그 동안 삼신이 다녀가며 아이와도 만난다고 한다.


'별걸 다 하네-' 싶으면서도

굉장히 묘한 기분과 함께

진짜 부모가 된 듯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유니크가

이렇게나 많은 축하와 기원을 받았으니

이제 건강하게 잘 자랄 일만 남았다.


앞으로 뒤집고 일어서고 기고 걷고 뛸

모든 모습들에

가장 큰 사랑과 응원을 담아

아빠의 축하를 보낸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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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ran 2015.03.03 15: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빠 육아일기는 정말 재미나요!!
    자주, 오래 보고싶어요.
    윤익이 건강과 행복을 기도할게요!




갓난 아이를 키우다 보면

몇 번(어쩌면 수백 번)이고

가슴 철렁이는 순간이 있겠지만


지난 달

철렁했던 그 첫경험에 대해

(이제야 모든 게 끝난듯 하여)

남겨보기로 한다.


때는 1월 13일,

유니크 탄생 꼭 2달 째 되는 날이었다.


며칠 전 부터

유니크는 분유량줄고

그래서 그런지

활기찬 기운이 좀 덜해 보여

아네스가 이래저래 걱정을 하고 있던 차였고


나와 장모님은

엄마가 너무 예민해서 그런거라며

아네스를 무안주듯 안심시켰다.


하지만

쉽게 넘지 않던 37도를

오르내리기 2~3일 반복하더니

전날(12일) 밤에는

37.5도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 시기 아기 정상체온은 37.5도까지라고 한다.

하지만 딱 그 체온이 되고부터는 긴장해야 한다.


13일 아침

다행히 체온이 잦아들어

난 출근을 했고

아네스도 긴장하며 밤을 지샜지만

사뭇 안심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오전 11시쯤

아네스에게

통화할 수 있냐는 뉘앙스의 연락이 왔고

알고보니

유니크는 분유도 먹지 않고

체온은 38도 가까이 치닫고 있었다.

난 그 길로

오후 반차를 내고 집으로 갔다.



집에 가보니

유니크는 확연히 기운이 없었고

아네스는 이젠 완전히 신경이 곤두 서 있었다.


바로 짐을 챙겨

(이땐 얼마나 챙겨야 할 지 몰랐다)

인정병원 소아과로 갔다.


잠깐 지나가는 감기

큰 징후 없는 가벼운 고열이길 바랬다.


하지만

그 '징후 없는 고열'이

이 시기 아이에겐 위험한 신호였고

의사선생님은

38도를 기어이 찍은 체온을 보자마자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처방을 내렸다.


채 두달 된 아기에게 내려 진

'큰 병원'이라는 엄청난 무게감에

아슬하게 잡고 있던 기대감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아네스는 그 말을 듣는 동시에

뺨 위로 눈물이 비오듯 흘렀다.


가까운 큰 병원인 연대 세브란스는

외래 첫 진료라

대기만 2~3시간이 걸릴지 모른다는 소식이 들렸고

유니크 체온은 38.4도까지 올라갔다.

혼란스러움은 더해갔다.


다행히 인정병원에서 따로 연락을 취해 준 덕분에

병원에 도착한 지 한 시간이 못되어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백일 전 아기는

엄마에게 받은 면역이 남아있어

고열이 잘 발생하지 않으니

징후를 반드시 찾아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선 입원검사를 해야한다 했다.


아기의 고열은 몸 속 어딘가에서 세균과 싸우고 있다는 것이고

그 위치와 범위를 정확히 알아야 더 큰 병을 막을 수 있다.


의사선생님의 말투는 차분했지만

가능성이라는 이유로

입에 담기 무서운 병명들이 오갔다.


문제는,

(하루 109만원에 달하는 특실 말고는)

입원실이 없다는 거였고

유일한 대안은

'응급실 소아병동 무한대기'였다.



응급실은

빨간색 커다란 간판이 말해주듯

갖가지 혼란과 울음이

정신없이 마구 뒤섞여 있었고

우리처럼 입원실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이미 십수명은 돼보였다.


아기를 데리고 가 본 사람은 공감하겠지만

그곳에 처음 가면 

병이 낫긴 커녕 더 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 있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큰 병원일수록 아픈 환자는 더 많이 모여있고

그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무겁다.



앉을 곳도 정신도 없는 응급실에서

유니크를 두는 것 조차 미안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작디 작은 몸을 여기저기 뉘여

혈액, 소변, 뇌척수, 엑스레이 검사가 이어졌고

아무것도 모르고 자지러지게 우는 유니크가

말할 수 없이 안쓰럽고 가여웠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르고

저녁이 되자

장인장모님이 소식을 듣고 달려오셨고

우린 집에 들러

긴 시간이 될 듯한 레이스에 대비해

나머지 짐들을 챙겨왔다.


자정이 되고

장인어른과 난 다음 날을 위해 집으로 돌아왔지만

장모님과 아네스는

수액바늘을 꽂고 간이 유모차에 겨우 누인 유니크와

밤새 울음소리 끊이지 않는

응급실 벤치에서 밤을 지샜다.


다음 날 퇴근 무렵

장모님의 몇 번에 걸친 부탁과 항의 끝에

드디어 2인실을 배정받았다.

병원에 간 지 30시간 만이었다.


병원도 입원대기 환자를 위해 애쓰고 있음은 당연하겠지만

입원 순서는 대기순이 아니며 환자는 알길이 없다.


난 집에 들러

유니크의 거의 모든 짐을 챙겨 병원으로 갔다.

행히 체온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유니크도 기운을 찾았지만

아직은 가능성을 염두한 몇 번의 검사가 더 남아있었다.


백일 전후 아기의 고열 처방은 항생제 투약이 대부분이며

입원과 함께 바로 시작되어 날짜별로 세균추이를 체크하게 된다.


렇게 하루하루

총 5박 6일이 지났고

유니크는 최종적으로

급성 요로감염 및 신우신염 진단을 받았다.


아직 기관이 온전치 않은 어린 아기라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다행히 이후 혈액과 소변 등 모든 검사에선

더 이상 균이 발견되지 않았다.


사실 아네스는

병원에 오기 며칠 전부터

소변을 볼 때마다 찡그리는 유니크 표정을 느꼈고

소변에서 나는 묘한 약냄새도 알아채고 있었다.

아네스는

'너무 예민한 게' 아니라

'아주 정확히' 유니크를 관찰하고 있었고

몇 번이나 더 늦지 않길 너무 다행이라는

선생님의 말을 들을 때마다

아네스에게 더 고맙고 미안했다.


아기는 몸의 이상과 변화에 대해 어떤식으로든 사인을 보낸다. 

적시에 알아채는 건 부모의 관찰과 관심에 달려있(다는 걸 깨알았)다.


일요일에 돼서야 퇴원한 유니크는

그래도 아직 기초체온이 높은 상태여서

열흘치 항생제를 처방받았고

우린 그동안 세심히 유니크를 살폈다.


특히 매일 밤낮을 거르지 않고

체온이 0.1도가 오를 때마다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아네스가 걱정되었다.


우린 결국 미루고 싶었던

마지막 '소변역류검사'를 받기로 했다.


소변역류검사는

요도에 거꾸로 호스를 밀어 넣어

요로에 검사액을 채우고

소변이 역류하는지 보는 방식인데

감염된 소변이 장기로 옮아갈 수 있는 위험성을 체크하기 위해

요로감염 증상에 꼭 필요한 검사다.


어른도 힘겨울 정도로

검사방식이 거칠기 때문에

백일도 안된 유니크에게 그 검사를 시키기가

너무나 싫었지만

의사도 되도록 해보길 권고했고

우리도 마지막 위험요소까지 없앨 때까지

마음을 놓이지 않아

외래로 검사일을 잡았다.


다시 무거운 마음으로

병원에 들렀다.

검사와 함께 자지러질거란 예상과 함께

아네스도 이미 눈물이 그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요도 속으로 20cm가 넘는 호스가 드나들고

검사액이 거꾸로 들어가는 동안

유니크는 단 한 번 찡그릴뿐 전혀 울지 않았고

의사선생님조차

너무나 신기하고 기특해하긴 매한가지였다.


검사는 그렇게 무사히 종료되었고

다시 며칠 뒤 병원에서

최종적으로 이상없다는 검사의견을 받았다.


그리고 2월 5일,

(3개월 뒤 추적검사를 하기로 했지만)

24일 만에 모든 여정이 끝났다.


고작 두달 된 아기에게

24일은

3분의 1만큼이 더 자랄 정도로

긴 시간이었고

또 실제로 많이 자랐다.



그리고 더 예뻐졌다.


나름 한다고는 했지만

애기가 세균이랑 싸우고 있는 줄도 몰랐던

모자란 부모의 미안함인건지

다시 아프지 않고 무사히 회복된 결과가

고마웠던건지


유니크는 전보다 훨씬 더 많이

사랑스럽고 예쁘다.

그래서 애틋하다.


아무 일 없는 셋의 일상이 더 소중하고

먹고 자고 싸기만 해도 기특해 죽겠다.


그리고 유니크가 아픈동안

양가 부모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몸으로 마음으로 같이 고생하셨고

더 많이 다행스러워 하셨다.

둘이서 키운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더 많이 감사한 마음이다.


무엇보다 아네스의 고생이 말할 수 없이 컸다.

엄마로서 아네스는

어느덧 정말 큰 존재가 되었다.

이제 나만 잘하면 된다.


참,

태아(어린이)보험의 필요성도 절감했다.

일주일 병원비가 백만원이 훌쩍 넘었지만

90% 남짓 돌려받았다.


어쨌든

모든 것이 잘 마무리 되어 다행이고

이 포스팅을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이제,

아프지 말자 내 새끼

아빠가 많이 사랑한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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